RISC-V란 무엇인가? – 오픈소스 칩 설계의 부상
RISC-V는 최근 반도체와 인공지능 산업에서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오픈소스 기반의 명령어 집합 아키텍처(Instruction Set Architecture, ISA)다. 기존에는 인텔의 x86, ARM의 아키텍처가 시장을 지배했지만, RISC-V는 라이선스 비용이 없고 자유롭게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점점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RISC-V가 무엇인지, 왜 갑자기 급부상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기술이 AI, 엣지 컴퓨팅, 디지털 주권 등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살펴본다. 특히 기술 설명에만 머무르지 않고, 내가 직접 RISC-V 관련 프로젝트나 기술 데모를 접하며 느꼈던 인상과 해석도 함께 담아 ‘사람이 쓴 글’로 구성했다.
RISC-V란 무엇인가 – 칩 설계의 오픈소스를 꿈꾸다
RISC-V(리스크 파이브)는 2010년대 초 미국 UC 버클리에서 처음 개발된 오픈소스 명령어 집합 아키텍처(ISA)다. 명령어 집합이란 프로세서가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는 기본적인 연산 명령의 집합으로, 칩의 ‘문법’ 같은 역할을 한다. 전통적으로 이 시장은 인텔의 x86, ARM의 Cortex 계열이 독점해왔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라이선스 비용이 들고, 특정 기업의 통제 아래 움직이기 때문에 독자적인 설계와 배포가 어렵다는 제약이 있었다. 반면 RISC-V는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오픈소스 기반이라는 점에서 게임 체인저로 떠오르고 있다. 내가 RISC-V에 처음 흥미를 느꼈던 건 단순히 기술 때문이 아니었다. 이 아키텍처가 갖는 철학적 가치—즉, 칩 설계에도 '자유'와 '개방'이라는 개념이 들어올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지금까지는 CPU 하나를 만들려 해도 특정 회사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RISC-V는 그런 구조를 해체하면서, 수많은 스타트업과 교육기관, 국가 기관까지도 자체적으로 프로세서를 설계하고 실험할 수 있게 만들었다. 나는 이 구조가 일종의 ‘디지털 민주주의’처럼 느껴졌고, 기술이 특정 권력에 종속되지 않는 방식으로도 진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 특히 최근에는 AI 가속기, IoT 디바이스, 스마트워치, 엣지 컴퓨팅 영역에서 RISC-V 기반 칩들이 활발히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텐실리카(Tensilica)나 시냅틱스(Synaptics) 같은 기업들은 저전력 기기용으로 RISC-V 기반 프로세서를 상용화했으며, 실제로 내가 사용해본 SBC(Single Board Computer) 중 일부도 ARM이 아닌 RISC-V 기반이었다. 이처럼 이제는 단순한 실험 단계를 넘어 실사용 가능한 플랫폼으로 RISC-V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에서, 단지 기술의 하나가 아니라 하나의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왜 지금 RISC-V인가 – 기술적 실용성과 전략적 선택
그렇다면 왜 지금 RISC-V가 이토록 주목받고 있을까? 내가 보기엔 기술적인 이유와 전략적인 이유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먼저 기술적 측면에서 RISC-V는 단순하면서도 확장 가능성이 높다. 기존 ISA들은 오랜 시간 동안 업데이트되며 불필요한 명령이 많아졌지만, RISC-V는 최소한의 코어 명령어 집합을 기준으로 시작해, 필요한 모듈만 추가하는 방식이라 설계가 훨씬 유연하고 간결하다. 실제로 내가 RISC-V 기반 시뮬레이터를 돌려보면서 느낀 건, 개발 환경이 가볍고 예측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복잡한 칩 구조에서 오는 시행착오를 줄이고, 커스터마이징이 쉬운 건 개발자 입장에서 정말 큰 장점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전략적 측면이다. RISC-V는 특정 기업의 지적재산권(IP)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기술 주권 확보가 중요한 국가나 기업에게 매우 매력적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 기술 분쟁 속에서, 중국이 RISC-V에 적극 투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만약 기존처럼 ARM 아키텍처에 의존한다면, 제재가 들어올 경우 칩 자체를 생산하거나 수출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RISC-V를 쓰면 외부 제약 없이 자국 내 칩 설계 및 생산이 가능해진다. 이건 단순한 기술 선택을 넘어서 ‘주권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내가 RISC-V를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 구조가 교육, 연구,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에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는 저비용 개발 보드로 RISC-V를 활용해 컴퓨터 구조를 실습하고 있고, 하드웨어 스타트업들은 ARM 라이선스 비용 없이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다. 실제로 내가 참여했던 해커톤에서도 한 팀이 RISC-V 기반 IoT 보드를 활용해 환경 감지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빠르고 유연한 설계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굉장히 실용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결국 RISC-V는 비용을 낮추고 진입장벽을 없애면서, 혁신의 범위를 넓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RISC-V가 바꿔갈 생태계의 지형도
RISC-V의 등장은 단지 기술의 추가가 아니라, 생태계 전반을 다시 설계하는 움직임에 가깝다. 특히 나 같은 개인 사용자나 스타트업 입장에서, 칩 설계가 ‘접근 가능한 분야’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다. 예전에는 칩 하나 만들기 위해 대기업과 계약하거나 수억 원의 라이선스를 지불해야 했지만, 지금은 RISC-V 플랫폼과 오픈소스 툴체인을 활용해 개인도 최소한의 범위에서 프로토타이핑이 가능하다. 나는 이 점에서 RISC-V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리눅스가 했던 역할을, 하드웨어 설계 분야에서 하고 있다고 본다. 폐쇄적인 구조를 무너뜨리고, 개발자 중심의 문화를 확산시킨다는 점에서 말이다. 특히 인공지능과 맞물리며 RISC-V는 ‘맞춤형 AI 칩’ 설계의 중심으로도 부상하고 있다. 대형 LLM이나 디퓨전 모델처럼 연산이 중요한 AI 시스템에서는 GPU 중심의 가속기가 여전히 주도적이지만, 엣지 디바이스에서는 저전력, 저지연이 중요하다. 이 지점에서 RISC-V는 AI 연산에 최적화된 명령어 집합을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기 때문에, 무척 유리한 조건을 갖는다. 실제로 나는 최근 RISC-V 기반의 AI 엣지 보드 시제품을 테스트하면서, 크기는 작지만 성능과 전력 효율이 모두 준수하다는 점에서 놀랐다. 향후 퍼스널 AI, 웨어러블, 스마트 시티 같은 미래 기술의 기반이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물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소프트웨어 생태계, 디버깅 툴, 상용화된 컴파일러 등은 아직 ARM이나 x86에 비해 부족한 편이고, 상용화된 SDK의 편의성도 개선될 여지가 크다. 하지만 나는 이런 제약이 점차 극복될 것이라 확신한다. 오픈소스의 강점은 결국 ‘집단의 힘’이다. 리눅스도 처음엔 마이너한 실험 프로젝트였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서버와 클라우드의 기반이 되었듯, RISC-V도 꾸준히 개선되고 진화하면서 표준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은 작은 불씨 같지만, 그 안에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불꽃이 숨어 있다고 본다.
RISC-V는 단순한 ISA가 아니다. 그것은 선언이다
RISC-V는 단지 하나의 명령어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기술의 개방성과 접근성을 위한 선언이자, 칩 설계의 민주화를 향한 움직임이다. 나는 이 기술을 통해 하드웨어 설계가 더는 특정 기업이나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다양한 창작자와 개발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느낀다. 물론 완벽하진 않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 실험과 진화가 가능하다는 점이 오히려 매력이다. 우리가 이 기술을 통해 어떤 생태계를 만들어갈 것인지, 이제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RISC-V는 기술을 넘어 철학이다. ‘누구나 설계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겠다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선언 말이다.